제가 경험했던 백업에 관한 아련한 기억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봤더니 역시 처음 시디로 백업했을 때가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요. 1995년 제가 처음으로 pc를 구입했던 시기였습니다. 윈도우 3.1에 이어 드디어 윈도우 95가 나오던 시기였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펜티엄 75MHZ 사양의 삼성의 일체형 매직스테이션을 구입하고 그렇게 좋아라했는데, pc에 관해 하나둘씩 알게되면서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했더니 보드 자체가 확장성이 꽝이라 나중에는 후회를 많이 했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당시 들어있었던 하드디스크 용량이 850mb였던 것 같네요.
윈도우 3.1 운영체제에 학교에서 배웠던 오토캐드 프로그램과 작업 과제와 이후 01410 정액제를 쓰면서 모뎀으로 인터넷을 하면서 긁어모은 수많은 그림 파일, 1995년 프라운후퍼팀에 의해 정의된 mp3 확장자를 cd롬으로 인코딩해서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음악을 많이 듣고 mp3란걸 알게 되어 도시바 2배속 시디롬으로 인코딩했던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지금처럼 윈도 gui 환경이 아니라 도스 프롬프트로 명령어 입력해서 mp3를 만드는 시기였고 cd롬 배속도 저배속이라 시간도 상당히 많이 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파일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850mb 하드디스크 공간도 부족하게 되어 백업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3.5"/ 5.25" 디스켓으로 연명하며 보냈습니다. 내 돈 주고 처음으로 정품 구입했던 훈민정음 95도 3.5" 디스켓으로 판매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제 딴에는 원본은 소중하게 백업한다고 훈민정음 95를 디스켓으로 일일이 복사하고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파일들을 조금이나마 더 집어넣겠다고 디스켓 용량 뻥튀기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근근이 버텨나갔습니다.
어느 순간 이짓도 못 해먹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고 음성적으로 즐기던 시절이라 많은 분이 즐기고 관련 정보를 얻으러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게임 동호회들이 문전성시였습니다. 전 나우누리 비디오 게임 동호회에서 액플 치트코드를 대량으로 업로드하고 isa 슬롯으로 액플 코드를 전송해서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놀다가 한 게시판에서 우연하게 한 글을 읽었는데, 하드디스크 파일을 시디로 백업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광학레코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스카시 방식의 티악 레코더와 야마하 레코더가 얼마나 좋았는지 아마 아실겁니다. 하지만, 초창기 레코더는 정말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소위 업자들만의 전유물이었죠. 그도 그런 것이 mp3 포맷이 인기를 얻으면서 업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 목록과 mp3(비틀즈 전집, 퀸 전집, 아바 전집 등등) 보유 목록을 자랑하면서 판매를 하더군요. 일부 업자는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방문하면 데이터를 백업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레코더를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 하이텔과 나우누리에서 대전 지역의 백업 업자를 검색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 두 명의 업자가 있었습니다. 전화 연락하고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업자 한 명에서 먼저 방문했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나이 좀 드신 어른인줄 알았는데,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분이었던 겁니다. 집이 부자였던 터라 레코더 2대와 방 벽장에는 시디를 박스채로 쌓아놓고 있어 부러움과 괴리감을 동시에 맛봤었죠.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 백업을 진행하는 동안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면서 이후에도 백업을 하러 종종 이용했습니다. 백업 가격을 얼마나 줬는지는 아무리 기억을 하려 해도 생각이 안 나네요. ㅡㅡ;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이 백업하는 곳을 방문했더니 그곳은 아예 가계를 차려놓고 장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 불법 천국이었죠.
컴퓨터 프로그램 목록과 mp3 목록,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커버를 인쇄한 바인더를 배치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골라 현장에서 바로 백업할 수 있게끔 레코더 수도 엄청났습니다. 백업하는 시간 동안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 2대를 매장에 배치해 철권 3를 즐길 수 있었고 중학생부터 회사원까지 쉬지 않고 매장을 방문해 항상 북적였습니다.
그렇게 두 백업 업자를 통해 하드디스크 공간을 비워나가다가 먼저 방문했던 사람이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레코더가 꼭 필요할 것 같은데, 싸게 해준다며 생각 있으면 사가라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돈이 없어 부모님한테 사정해 돈을 꿔서 레코더와 스카시 카드, HP, KODAK 순골드 시디까지 제가 사버렸습니다. 업자를 할것도 아니었는데, 솔직히 무리를 했던 겁니다. 돈 메우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친구한테 소개받고 낮에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노가다하고 밤에는 호프집 종업원 일까지 했었습니다.
레코더 장만을 하고 본격적인 백업을 시작하니 정말 즐겁더군요. HP, KODAK 순골드 미디어는 너무 비싸서 싼값에 쓴다고 삼성 650MB랑 웅진 시디 샀다가 개피본 기억도 납니다. 당시 시디 표면은 염료가 다양해서 색깔도 골드, 블랙, 블루, 그린 등 다양했거든요. 멀쩡히 잘 굽고 어느 순간 데이터가 날아가는 삼성 650MB 시디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최초로 백업을 받았던 미디어는 라벨이 없는 소니 미디어였습니다.
학교 과제였던 오토캐드 데이터와 하이텔, 나우누리에서 긁어모은 유머와 각종 글을 저장했는데, 찾아보니 잘 안 보이네요.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 않았으니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는데, 다시 찾게 되면 기념으로 잘 보관해놔야겠습니다.
당시 즐겨 사용했던 코닥 골드 미디어들입니다.
지금은 구경하기 어려운 미디어죠. HP 골드 미디어도 있는데, 꺼내기 귀찮아서 전에 촬영한 사진들만 다시 올립니다.
광미디어 보존 기간이 100년이라고 하지만 검증된 바 없죠.
처음 백업했던 미디어들이 이제 갓 10년을 넘긴 상태니까 앞으로도 계속 현재 진행형입니다.
10년이 넘었으나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던 미디어들은 품질 테스트를 해도 여전히 훌륭하니
정말 오랜 시간 기억하고 싶은 자료들은 좋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지금까지 백업 생활 10년이 넘은 놈의 경험담이니 기억해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