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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디지털타임즈
미국의 장외주식시장 나스닥의 최고정보담당자(CIO)인 스티븐 랜디치는 요즘 시스템 업그레이드 재미에 푹 빠져있다. 나스닥 CIO로 3년째 일하는 동안 그는 주식거래시스템을 두번 업그레이드했다. 업그레이드 전 `팔자` `사자 주문을 낸 뒤 실행되기까지 2초가 걸렸다면 이제 똑같은 과정을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2초. 눈 깜짝하는 시간보다도 더 짧은 순간에 주식거래는 마무리된다.
랜디치 CIO가 행복한 진짜 이유는 바로 업그레이드에 든 비용 때문이다. 그는 메인프레임을 저가형 컴퓨터로 교체하면서 25% 가까이 비용을 절감했다. 그는 "바닥이 없는 것처럼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IT업체 입장에서 이같은 현상은 고통, 그 자체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더불어 IT시장 성장을 발목잡는 주범은 다름아닌 제살깎기식 가격경쟁에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온라인판은 시장조사기관인 IDC자료를 인용, 지난 2000년 이후 올해 처음으로 IT산업의 2.3% 성장을 예상하는 등 회복기미가 감지되고 있지만, 지속적인 가격하락이 물귀신처럼 IT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상무부의 기술 가격 지수는 지난 1분기에 전년동기에서 3% 떨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선두 기업은 시장의 가격인하 압력에 끄떡없는 모습이나, 많은 기업들은 실제로 `너 죽고 나 살자 는 식의 출혈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월의 컴퓨터 부문 생산자 가격 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서 21.9%나 뚝 떨어졌다.
두 가격 지수의 급락은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의미한다. 90년대 기술 판매는 적절한 이윤을 원동력으로 해마다 1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시장의 가격인하 압력이 최고조에 달한 현재, 기술 판매로 인한 마진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준에 달했다는 것이 IT기업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메릴린치의 스티븐 밀루노비치 애널리스트는 "기술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데는 최소한 1~2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북미지역CIO 댄 맥니콜은 "만나는 기업마다 울상"이라며 "IT산업의 행복한 날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반면, 이러한 가격 경쟁으로 기업들은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 과거 PC가격이 칩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하됐고 이에 따른 가격전쟁이 PC산업의 쇠퇴를 부추겼듯, 이제 고가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기업용 소프트웨어도 비슷한 운명에 직면한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IT기업들의 든든한 수익원이었던 관리비용도 이제 가격인하 대상이 됐다.
MIT 슬로엔 경영대의 에릭 브리놀프슨 교수는 "기술의 가격인하가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올해 기업과 경제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CEO도 "생산성과 효율성 증진으로 인한 결과는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후반 IT산업이 한창 호황기를 맞았을 때 델은 시장의 가격경쟁을 무력화시켰다. 델의 직접판매 비즈니스 모델은 소매업체를 통해 PC를 판매하는 것 보다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델은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면서도 수익률은 더욱 높아졌다. 이후 세계PC 시장에서 델의 시장점유율은 10.7%에서 15%로 상승했다고 메릴린치는 밝혔다.
일부 IT산업의 선두기업은 가격 정책을 견고하게 고수한다. 기업애플리케이션 시장의 선두격인 독일의 SAP는 경쟁사들이 거래를 따내기 위해 대폭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격을 낮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닝 카거만 SAP CEO는 "가격인하가 오히려 시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쟁력이 약한 업체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가격을 내리거나 아니면 죽는 수밖에 없다.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업체인 노벨은 최근 50%의 가격인하 광고를 게재했다. 이 회사의 베스트셀러 제품중 하나로 네트워크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관리해주는 `젠웍스(ZENworks) 소프트웨어 를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게다가 취약한 IT업체는 수요기업과 협상할 때 더욱 위축된다. 노벨의 컨시드 크리스 스톤 부회장은 "우리는 이때 더 위축된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IT기업의 비즈니스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들이 가격 결정력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여기에 IT시장의 대다수 제품이 일상용품화 되어가는 것도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PC뿐 아니라 서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까지 그렇다.
한때 어려움을 겪던 컴퓨터 및 서비스 제공업체였던 유니시스의 경우, 이같은 일용품 시장에서 빠져나와 쉽게 대체가 불가능한 파이낸셜 서비스나 트랜잭션 처리 등의 새 시장에 주력함으로써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쨋거나 시간이 흐르면 IT기술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일어남에 따라 선두 업체는 점차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취약한 IT업체의 운명은? GM과 같은 대기업과 협상을 마친 후, 그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테이블을 떠날 것이다.
박정연기자.윤달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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