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이 자동차 기자인 글쓴이는 평소 레이싱 게임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 게임 보이로 로드파이터와 바이크 레이싱 게임인 행온, PC를 접하면서 한창 즐겼던 데이토나 USA, 모토 GP, 세가 랠리 챔피언쉽 등의 게임을 즐겼다. 남들을 제쳐 앞질러가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레이싱 게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니드포스피드와 더트, 월드 랠리 챔피언쉽, 포르자 모터스포츠, 그란투리스모, 나스카 레이싱 등 여러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 느꼈다. 실제 차량과 다름 없는 게임 속 자동차의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요샛 말로 정말 심쿵할만큼 멋지다.
요즘은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나의 드림카를 게임에서 대리 만족하며 가상으로 몰아볼 수 있다. 그런데 레이싱 게임 속 자동차들은 어떻게 해서 실제 차량과 똑같은 모습으로 디자인된 것일까?
■ 가상을 현실로 만든 그래픽의 발전
현재 출시된 레이싱 게임들은 과거를 초라하게 만든다. 많아야 몇 가지 색을 내는 게 전부였던 과거엔 배경과 차량 묘사보다는 레이싱 게임 자체의 재미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색상을 화면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레이싱 게임은 과속으로 달리다 벽에 부딪치면 차량의 충돌 부위가 파손되고, 오버스피드로 급커브 코스에 진입하면 차량 특성에 따라 언더스티어 혹은 오버스티어로 미끄러지는 등 치밀하게 계산된 게임들이 많다. 날씨 변화에 따른 주행 특성 등 현실의 변수를 게임으로 얼만큼 재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 프로 레이서가 니드포스피드 시프트2 언리쉬드로 가상 주행한 영상
이중에서도 글쓴이는 콕핏 시점을 지원하는 레이싱 게임을 더 좋아한다. EA 게임즈의 니드포스피드 시프트2 언리쉬드, 코드마스터즈의 그리드2가 대표적이다.
이런 레이싱 게임으로 글쓴이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 게임이 있었다. 바로 니드포스피드 : 프로 스트리트였다. 레이싱의 기본인 달리고, 서고, 돌고를 떠나서 글쓴이를 처음으로 멘붕에 빠뜨린 게임이다. 클러치와 기어 노브를 옮기는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으면 변속 미스로 차량이 꽥 소리를 내며 울컥여 가속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어떤 차는 공차 중량이 너무 가벼워 코너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게임 자체도 코스 배경보다 차량 묘사에 집중됐다.
당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이 게임 덕에 아웃 인 아웃, 인 아웃 코너링 주행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실제 BMW 드라이빙 센터 내의 서킷에서 이런 주행법으로 선행 차량 압박 후 추월에 성공하기도 했다.
게임이라도 긴장의 끈을 좀처럼 놓치지 못하게 만든 서킷이 있다면 독일의 뉘르부르크링이다. 다른 서킷들은 가상으로 몇 번 주행하고 나면 브레이킹 후 재가속 타이밍을 읽고, 차량을 일부러 슬립시켜서 빠른 속도로 코너를 탈출시키기도 하지만, 뉘르부르크링은 아무리 많이 달려도 낙차가 크고 변수가 많아 예측이 어렵다. 주행 중 오일이 튀어 앞 유리를 희미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연출시켜서 가상 레이싱에 임하는 플레이어의 긴장감을 배로 높인다.
■ 명작 레이싱 게임, 라이센스 인증은 필수?
▲ 프로젝트 카 게임 플레이 영상
니드포스피드와 더트, 프로젝트 카를 비롯한 레이싱 게임들은 단순히 차량과 코스를 똑같이 그래픽으로 디자인한다고 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자동차 제작사 및 국제 자동차 연맹(FIA) 등의 단체서 실제 차량과 코스를 게임 디자인으로 써도 좋다는 라이센스 인증을 받아야 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코드마스터즈의 F1 시리즈가 그렇다. FIA가 전 세계 17개 지역의 서킷을 다니며 진행하는 포뮬러 원(Formula One) 레이스를 주제로 포뮬러 원 머신의 실제 모습과 주행 성능, 서킷, F1 참가팀 별 선수 명단, 팀 스코어 배분 등 게임으로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반영했다.
▲ WRC4 게임 플레이 장면. 차량은 폭스바겐 폴로R WRC다.
오프로드 레이스의 대명사 더트, 월드 랠리 챔피언쉽(WRC)도 마찬가지다. 서스펜션과 전고, 기어비 셋팅에 따라 달라지는 주행 성능, 폭스바겐과 아우디, 스바루와 미쯔비시, 포드 등 여러 참가팀의 랠리 카, 시즌 참가 선수 명단, 세계 각지에서 운영 중인 FIA의 WRC 대회용 코스가 적용됐다.
▲ 라이센스 승인된 게임 리스트 중 일부
닛산과 폭스바겐 등 주요 자동차 제작사들이 게임용 콘셉트카를 만드는 포르자 모터스포츠, 그란투리스모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드와 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 이니셜 D, 릿지 레이서 등 이미 잘 알려진 레이싱 게임들도 정식으로 라이센스 승인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 예외 아닌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2'
실제와 똑같은 게임 속 자동차는 오직 레이싱 게임에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리얼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인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2에서도 똑같은 차를 찾을 수 있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2는 스카니아, 메르세데스 벤츠(다임러 트럭), 만, 볼보, 르노, DAF, 이베코 등 7개 트랙터 제작사의 라이센스 인증을 순차적으로 받아서 더욱 유명해진 게임이다.
하지만 SCS 소프트웨어의 역작인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가 처음부터 유명세를 탔던 건 아니였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별 도움되지도 않는 게임이라는 냉소적 반응으로 라이센스 인증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인증을 거부한 제작사의 트랙터는 가짜 로고와 부분 변경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으로 게임을 출시했다.
▲ 올해 5월 말 라이센스 승인된 메르세데스 벤츠 뉴 악트로스
스카니아의 부분 라이센스 인증과 독일 지역 런칭으로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게임 덕에 트랙터 판매량이 점차적으로 늘자 등을 돌렸던 제작사들이 SCS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 요청을 하나 둘 받아들였다. 현재는 가장 늦게 승인한 다임러 트럭을 끝으로 7개 트랙터 제작사의 모든 라이센스를 인증 받았다.
▲ 스칸디나비아 DLC 런칭으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뉴 악트로스, 볼보 트럭의 신형 FH16 및 글로브트로터, 스카니아 R시리즈 및 스팀라인 등 각 제작사가 출시해 판매 중인 최신형 트럭을 몰아볼 수 있다. 시동 시 배기음과 변속 로직, 모델 특유의 주행 특성, 적재 중량과 화물 길이에 따른 안정감 등이 골고루 반영돼 있으며, 확장 패키지인 스칸디나비아 DLC를 런칭해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를 다닐 수 있게 됐다.
■ 가질 수 없는 차, 원 없이 게임으로 몰아 본다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차라면 얼마든지 게임으로 대리 만족할 수 있다.
운전대와 변속기를 조절하며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그 차가 가진 고유의 감성 정도는 느낄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유명한 레이싱 게임들은 죄다 라이센스 인증을 필수로 간주하기도 하고 그래픽, 사운드 기술도 워낙에 좋아져서 바라던 차를 가상으로 몰아보는 것 자체로 재미를 느낀다.
치밀한 계산을 하며 안쪽 코너를 타이트하게 파고 들어 올라가 선행 차량을 제쳐 앞지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레이싱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공감할래야 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적어도 레이싱 게임이 이 정도로 상당한 발전을 거듭했다는 점은 인정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