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군을 전역하고 복학을 하기 전에 알바라도 해서 등록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싶었다. PC를 잘 다루었기 때문에 PC와 관련된 직종을 찾다가, TG삼보 콜센터에서 전화상담을 시작했다. 소비자 한명이
동일증상으로 3번이상 불량을 호소한 콜이 걸려와, 이미 알고있는 법규정대로 환불을 권했다. 다음날 센터장이
니까짓게 환불을 이야기하면 어떻게하냐고 따졌다. 법대로 안내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따졌지만, 그래도 그렇게하면 안된다고
하더라. 그날로 때려치고 나왔다.

또다시 일자리를 찾던 중, PC관련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직원을 뽑는다고 하여 면접을 보러
강남으로 갔다. 사장님은 내 지식을 마음에 들어했고, 마침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까지 작동해 2001년 5월, 입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당시 사이트 공개준비를 한창이던 웹사이트를 확인하고 2주가량 사이트 준비와 이벤트 준비 등으로 정신없이
보냈다. 그 사이트가 바로 보드나라였다.
2001년 6월 11일은 보드나라가 공식 오픈한 날이다. 금일로서 만으로 19주년이
되었으며, 한국나이로 20살의 청년이 되었다. 25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나는 어느덧, 44살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으며,
20대 젊은 구성원으로 PC기반 언론사중 가장 젊은 나이를 가졌던 회사는 대부분의 직원이 평균나이 40대를 바라보는 곳이
되었다.
'365일 필드테스트' 를 슬로건으로 필드테스트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성장한 보드나라는
12종 브랜드의 브랜드마다 5개씩, 총 60명이라는, 지금도 어마어마한 물량의 필드테스트로 활발한 정보 공유와 고퀄리티
리뷰컨텐츠를 쏟아냈다. 이후, 자체리뷰와 뉴스서비스, 지금은 대중화된 제품DB서비스, 공동구매를 차례로 런칭하였다.
19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남는 3가지 사건을 꼽으라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잡히지 않던
시절, 필드테스터중 한명이 등록한 뉴스게시물이 사이트개편으로 뉴스섹션으로 이관되면서, 저작권법으로 첫 내용증명을 받아보았던
때였다. 세상물정 모르던 20대 청년이라, 이대로 망하는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었던 문제였다. 이때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두번째는 델9800Pro 건 공동구매와 관련해 케이벤치와의 분쟁이 있던 때였다.
케이벤치에서 30만원에 판매한 델 9800Pro를 보드나라에서 1개월도 되지 않아 반값에 수백장의 물량을 판매했고, 이때
케이벤치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케이벤치측에서 보드나라에서 판매한 제품은 A/S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모략으로 문제를
잠재우려고 했나보다. 타사 뉴스에도 보도되었던 이 사건은 별 문제없이 A/S 다 해주고, 싸게 판매했다는 죄(?)로 온갖
욕을 다 먹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느 순간 그런일이 있었나 하며 잊혀져 버렸다.
세번째 사건은 그 케이벤치를 2012년에 인수하게 된 것이다. 당시 케이벤치가 여러
법적문제가 걸려있었고, 개인적으로 거액을 들이고 모험을 했던 상황이었다. 인수협상만 4개월 가까이 걸렸고, 인수를 완료하고
자리 잡는데만 1년에 더 넘게 걸렸다. 그렇지만 회사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드나라가 첫 서비스를 시작하던 2001년 당시에 주력 CPU는 펜티엄4 윌라멧과
펜티엄3 카퍼마인/투알라틴이었다. AMD는 Athlon XP 팔로미노였고, 이후 써러브레드, 바톤 등 AMD CPU의
1차전성기 시대였다. 컨덕티브펜으로 L1브릿지만 이어주면 오버클럭이 풀려버리는 AMD CPU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PC덕후들의 사랑을 받았다.
GPU는 NVIDIA 지포스3와 지포스2가, ATI 라데온 7200/8500 계열이
판매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도 그래픽카드는 지포스가 주류였으며, ATI 그래픽카드는 PC 덕후나 2D그래픽 디자이너 등
소수만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당시 주력이던 펜티엄4는 19년이 지나 코어i 시리즈 10세대까지 출시되었고, 지포스3
그래픽카드가 지포스 RTX 2000시리즈까지 출시됐으며, 128MB도 풍족하다던 메모리는 어느덧 16GB를 바라보고 있고,
HDD에서 SSD로, 19인치 CRT 모니터가 30인치대 4K모니터까지 출시되었다. 그만큼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20대 패기넘치던 젊은이는 어느덧 40대 중반의 (배는 나오지 않은 ㅎ) 중년이 되었다.
몇일밤을 날밤 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젊은이는 이제 조금만 수면시간이 적어도 하루종일 제정신을 못차리고 골골대는 중년이 되었고,
새롭게 출시되는 CPU나 메인보드등 샘플을 하루라도 먼저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다니던 청년은 새롭게 출시된 제품에 대한
내용을 기자들로부터 먼저 설명을 들어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새로운 CPU샘플이 도착하면 '일거리가 왔구나' 하고
기자들에게 전달하기 바쁜 남자가 되었다.
시간이 모든것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몸소 체험하고 있는
단계가 되었다. 청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노년은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말을, 지금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이야기하기 보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양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내가 나이를 먹고
변했구나 실감한다.
필자의 역할도 변했다. 필드에서 쓰고 직접 정보를 전달하는데 더 중요시했던 나는, 이제
전체 조직을 관장하고, 조직이 잘 굴러가는지 살펴보며, 컨텐츠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잘 작성되는지 확인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기자에게 전달해주며, 돈을 잘 벌고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로 변했다.
이런 변화가 애초에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변수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도 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보드나라나 케이벤치나 모두 애초의 설립목적에 맞는 PC와
IT기기를 구매하는데 있어 소비자에게 필요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또,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될 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하고 싶은 말 해야되는 성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한국나이로 20살이 된 보드나라의 생일을 맞아, 변하지 않는 성질과 보드나라의 설립목적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겠다는 말씀 드린다. 비록, 19년전과 같은 패기와 체력, 열정은
없을지라도, 이제는 노련함과 판단력, 경험을 바탕으로, 19년동안 함께 지내온 팀장들과,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체력과
패기 열정을 갖춘 젊은 기자들과 함께, 설립목적에 취지에 맞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점을 독자들께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