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과 컴퓨터의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꽤 깊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의 일등공신이 바로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게임산업이
컴퓨터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인텔이 1986년 출시한 i386프로세서를 탑재한 386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2년, Origin의 Wing Commander II가 출시되고 나서부터였다. Wing
Commander II 출시 이전까지 주력제품이었던 286컴퓨터는, Wing Commander의 등장 이후로, 386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3D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지금은 옛날처럼 프로세서가 게임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그래픽카드가 게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Nintendo DS처럼 특수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PC게임에서는 그래픽카드의 능력과 중요도는 이루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의 제작단계부터 그래픽카드사와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게임이 제작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다.
처음에는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특정 그래픽카드사 제품이 무조건 좋다!' 라는 선입견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는 온라인 게임이든
오프라인 게임이든, 대부분의 게임 시작 시에 그래픽카드 회사의 로고가 뜨는 것이 낯설지 않고, 패키지에 박혀있는 그래픽카드 회사의
로고가 낯설지 않다.
특히 NVIDIA는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면서, 메이저 게임개발사를 거의 장악해 관련 게임의 개발단계에서부터 자사
그래픽카드 기반으로 제작을 하거나 연구인력을 파견하고 CO-마케팅을 기획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 NVIDIA 그래픽카드 유저는 게임 플레이에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여져 있게 되는 또 다른
악순환을 낳고 있다.
게임 하나가 개발되는데 있어서는 우리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획, 스토리구성, 캐릭터구성, 맵제작 등
영화에서나 볼법한 기획과 동일한 기획이 선행되며, 여기에 만화에서와 같이 캐릭터 디자인 및 맵디자인도 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실제로 돌릴 엔진도 개발해야 한다. 한때 Interactive Movie를 표방했던 Origin의 Wing Commander
III, IV 의 경우는 게임 제작비가 실제 영화 제작비와 거의 동일한 비용이 들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수천만 달러로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래픽카드 칩셋 제조사의 스폰서는 게임개발사 입장에서 아주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관련 하드웨어,
마케팅 비용, 개발인력을 줄일 수 있으며, 완성도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델이 결코 나쁜 모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최적화된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모델인가? 그렇지만 과하면 모자란만 못하다 했듯이, 너무 스폰서업체의 최적화에 신경 써 다른 부분을 놓치다
보면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스폰서 업체의 그래픽카드를 사야 할 것인가?
어제 보드나라에서도 소개한적이 있는 Gears of War의 경우는, XBOX360을 기반으로 한 콘솔게임이 원작이며,
PC버전은 이의 컨버전판이다. 상식적으로 XBOX360이 ATi의 R500계열 칩셋 (DirectX 10의 통합 쉐이더 아키텍처
지원)을 기반으로 한 제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PC버전의 Gears of War에서도 ATi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컴퓨터에서 원활한 플레이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PC판 Gears of War는 기사에서도 보셨듯이, NVIDIA가 스폰서로 나선 게임으로, 실제 플레이 결과에서도 NVIDIA
그래픽카드 계열에서 더욱 원활한 플레이를 선보인다.
물론 이는 제작사의 자유이기 때문에 스폰서를 구하든 말든 필자가 뭐라 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NVIDIA 최적화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ATi 그래픽카드 사용시에는 특정옵션 시에는 현재 가장 고성능 그래픽카드인 3870에서도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한 화면을 선보인다. 이는 해본 사람은 안다.
결국, 제작사에서 NVIDIA의 스폰서를 얻기 위해서 NVIDIA가 요구했든, 자발적으로 진행했든 기존의 ATi에 최적화된
엔진을 몽땅 다 뜯어고쳤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한, 성능이 떨어지는 부분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아무리 ATi의
그래픽카드 드라이버가 시쳇말로 X같다고 하더라도 플레이는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제작사의 의무 아닌가? Gears of War의
다리 위 챕터에서는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로커스트들로 1초에 1프레임도 나오지 않는 괴력의 성능을 선보였다. (ATi 3870기반,
1920x1200 / 최상옵션) 어쩔 수 없이 1280x800 해상도에서 중간옵션으로 진행해 클리어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프레임이
눈에 보일 정도(15 ~ 20프레임선)의 성능만 보였다. 타사 그래픽카드의 성능과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다.
Crytek의 Crysi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Crysis에서는
성능에서 밀리는 건 기본이고, 멀티 GPU 기술 사용에서의 성능 차이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ATi의
CrossFire기술을 사용하였을 때 SLI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적인 구현도에서 현재 SLi보다 CrossFire가 훨씬 완성도가 높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적화 부분에서는 NVIDIA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한때 ATi가 스폰서를 맡았던 Half-Life2의 경우는 이와 반대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현재 ATi는 게임 스폰서에서
NVIDIA에 확연히 밀리는 인상을 보여준다. 정확하게, 대작의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가지고 공정하게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측정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스폰서업체의 게임만 제대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을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상상까지도 해본다. 그냥 게임을 즐기기만 하고 싶을 뿐인데, 게임에 따라 그래픽카드까지 교체해가면서 게임을
해야 하나?
일부 게임제작사에서 들려오는 미확인성 루머는 아예 바이너리코드를 조작해 상대방 그래픽카드에서는 일부러 성능이 떨어지도록
조작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물론 미확인성이다.
물론, 스폰서를 구하지 않고 출시되는 게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EA의 Medal of Honor 시리즈인데, EA
자체개발이기 때문에 그래픽카드 스폰서가 없다고 EA에서 확인해주었다. Medal of Honor 시리즈에서는 실제로 양사
그래픽카드의 특성을 타 게임에 비해 별로 타지 않는다.
과연 이 현상을 '게임을 하려면 NVIDIA 그래픽카드를 써라' 혹은,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스폰서업체 제품을 쓰라'고
정리해서 끝날 일인지 한번쯤 되짚어보고 싶다. 그래픽카드는 물론 게임에서의 역할 말고도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에서의 플레이 성능은 그래픽카드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기능임에 틀림없다. 특정 그래픽카드에서 성능이 떨어지거나 플레이가 어려운
상황이, 제품의 성능에 따른 자연적인(?)현상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만약 이러한 외적인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한번쯤
되짚어 보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ATi에게 스폰서 마케팅을 강화하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 되면 정말 게임에 따라
그래픽카드를 바꿔서 사용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복잡하다.
시장의 원칙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경쟁력은 바로 경쟁구도에 있다. 좋은 제품은 사랑 받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사장된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현재 2강 구도로 이미 압축돼버린 그래픽카드 코어시장에서, 만약 한쪽이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시장에서
외면을 받는다면, 그로 인한 피해 역시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점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지난 11월, ATi와 NVIDIA의 신나는 그래픽카드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고성능의 제품을 양사의 로드맵보다 6개월이나
빠르게 더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필자는 어느 특정회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단지, 이런 경쟁구도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 특정회사가 독점이 되어버리는 경우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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